출판사 : 다산책방
저자 :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나의 할머니에게>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여섯 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다.
사는 게 바쁜 탓인 걸까. 할머니를 추억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친할머니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어르신이 숱하던 그 시절치고는 배운 분이셨다. 신실한 불교 신자셨고 종종 불경을 필사하며 불심을 다지셨다. 할머니는 글씨를 정말 잘 쓰셨다. 수천 자를 써 내려가도록 흐트러짐 없이 멋졌다.
할머니는 요리도 잘 했고 손이 컸다. 요즘 사람들은 집에서 잘 하지 않을법한 손만두, 곱창전골,선지해장국도 곧잘 해주셨다.
한 번은 심하게 체해서 잠도 못 자고 끙끙 앓아누웠다. 할머니도 덩달아 못 주무시고 손을 따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초등학생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서일까. 아주 가끔 할머니가 꿈에 나온다. 스토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모습만은 생생하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걸까.
외할머니 댁은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할머니는 항상 골목 어귀까지 마중 나와 계셨다. 강한 사투리로 나와 내 오빠의 이름을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 할머니 댁을 떠날 때도 역시나 한참을 따라 나와 우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할머니.
외할머니의 백김치와 갈치, 옥수수는 가끔 내려가는 우리 가족을 맞이하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의 옥수수 맛을 재현해내지 못한다.
외할머니는 놀랍도록 아침잠이 없으셨다. 내가 눈을 뜰 때면 언제나 밭이나 절에 가고 안 계셨다.
외할머니 집 앞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어린 오빠와 나는 대나무로 칼싸움을 하며 놀곤 했다. 시간이 흘러 대나무숲의 자리에는 건물이 들어섰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60대, 70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시선에서 세상의 모든 할머니는 그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다. 한 때는 그들도 피 끓는 청춘이었고, 낭만과 꿈이 있었으며, 마음보다 먼저 늙어버린 몸 때문에 큰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는 것까지도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책장을 덮고 나니 왠지 눈물이 흘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의 엄마도 곧 완연한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할머니가 되겠지. 등장인물들에 대한 연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걱정,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할머니가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오는 작품을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늘 조연이라고만 생각했던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 여섯 편의 이야기 속 할머니들은 모두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이다. 여섯 할머니의 모습을 엿보면서, 할머니가 단지 나이 든 여자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아마 내가 더 어린 나이였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
무심하게 지나쳤던 할머니란 존재를 이제 조금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나의 미래이니까.
3분만 바라보면 눈이 좋아진다, 1년간의 실천 후 시력 변화 (0) | 202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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